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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01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올바른 이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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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고려 仁宗(인종) 23년 을축(서기 1145년)에 인종 임금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편찬하였다. 고대역사에 박식하신 고려 인종 임금은 이미 중국에서 발간된 소위 漢書(한서),後漢書(후한서),晉書(진서),宋書(송서),梁書(양서),魏書(위서), 東夷傳(동이전)등의 모든 사서에서 자국의 역사는 상세히 기록하고 외국의 사서는 간략히 기록한 사서를 탐독하셨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聖君(성군:3황5제)을 자국의 조상으로 둔갑시키고 폭군을 마치 성인 군자로 찬양미화하고 남의 나라는 야만족으로 깎아 내려 자국의 민족 자긍심이 일어나도록 변조한 사실을 발견하시고 왜곡 날조된 중국 사서의 對應策(대응책)으로 고려 인종 임금은 김부식에게 명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 지명과 城名(성명)은 당연히 중국 대륙에 존재한 지명입니다. 한편 중국은 일찍이 신화적 설화는 현세의 사람들이 누구나 믿을 수 있도록 “ 사마천 사기”에서 신화적 역사를 변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사마천 사기와 같이 현세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우리나라 고대사(신화)를 조작한 사서가 없었습니다. 고려의 인종임금은 우리나라 국사도 현세의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신화적 설화는 피하고 누구나 상식적으로 공감 할 수 있는 “한민족의 정사”를 김부식 공에게 명하여 편집된 사서가 오늘날의 “삼국사기”인 것입니다.

[민족의 正史(정사)]는 현세 사람들의 관점에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신화적 전설이나, 野史(야사)는 수록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납득 할 수 있는 바르고 확실한 역사를 뜻합니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신화와 같이 聖人(성인)의 神政(신정) 시대는 현세의 사람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역사입니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민족의 정사”는 어떠한 나라를 막론하고 현세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공감 할 수 있도록 편집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삼국사기 최초의 원본은 吏讀文字(이두문자)와 漢文(한문)을 병용하여 편찬되었다. 두 번째 간행은 약 100년 뒤인 13세기 후반에 성암본이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것은 1책(권44-50)까지의 부분만 남은 것은 零本(영본)이라고 한다. 그 후 248년이 지난 후 조선 태조 2년 계유(1393년)에 다시 漢字(한자)로 인쇄하여 삼국사기를 출판하였으나 이 사서는 남아 있지 않고 중종 7년(1512년) 경주부에서 임신본 또는 정덕본이 완질로 남아 있었다. 선조 1573년에 간행된 옥산서원본이 있었으며, 영조 36년(1760년)에 금속활자본이 있었다.

일제식민지 시대의 1931년 근대의 영인본이 있다, 즉 1573년에 간행된 옥산서원본(삼국사기)의 중요부분을 1931년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제와 이병도가 [삼국사기의 중요 본문의 글자를 한자를 빼거나 더하여 본문을 변조]하여 신활자로 편집한 것이 오늘날의 ”삼국사기“인 것이다.

일제가 삼국사기의 원본을 사대사서로 변조한 역사적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한민족의 사학자 산채호는 고대문화의 폭을 좁혔으며 사대주의에 빠진 김부식은 묘청의 난 이후 사대주의가 팽배한 시대의 책이라고 혹평했던 것이다. 그리고 삼국사기의 원본을 사대사서로 조작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의 제자 이기백은 유교적 합리주의에 입각한 사서이며 객관성과 합리성의 유지를 노력한 사서라고 평했다.

한겨레여...!
넋을 잃지 않고 제정신이 살아있다면 우리나라 성군의 역사를 말살한 일제가 어찌 삼국사기의 원본을 변조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으며, 삼국사기에 기록된 지명을 어찌 한반도의 지명으로 믿고 있는가? 또한 삼국사기의 원본을 변조하지 않고 어찌 우리나라 역사를 변조 할 수 있겠는가?

삼국유사를 편집한 일연 국존(1206-1289년)은 중국사서는 물론 일본서기, 고려사“등을 깊이 통찰하신 후 민족의 正史(정사)에서 기술 할 수 없는 신화적인 역사를 수록하여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은유법으로 간략히 기술하였던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편집한 김부식 공의 충정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 聖人(성인)의 神政(신정)시대 역사”를 삼한의 후손들이 불신 부정 할 것을 염려하시며 신정시대의 불가사의한 우리나라 사료들을 많이 수록하여 후세에 전래하였던 것입니다. 아울러 새로 편찬된 고려사를 탐색하고 많은 부분에서 誤記(오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국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권을 근간으로 오늘날의 “국사교과서”가 편찬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를 한민족의 정통사서로 부정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신석호 등이 우리나라 사학을 정립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사는 일제식민지시대에 조선사편수회의 일본인 이마니시(今西龍)와 동경제국대학의 이케노우치(池內宏)등 20여명의 일본인 학자와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신석호 등이 이미 사대사서로 변조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을 증서로 삼아 " 고구려, 백제, 신라 "의 3국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왜곡 조작하고 광활했던 삼한과 삼국의 영토를 한반도 내로 쪼그라들게 [반도 조선사:한국의 국사]를 편찬했던 것이다.

즉 환인의 환국시대 - 환웅의 배달국시대 - 단군의 조선국 삼한시대- 해모수의 북부여 시대의 무려 7,166년의 역사적 사료를 한국의 국내는 물론 중국 각처의 고대 사료를 수집하여 무려 20만 권을 불태워 없애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권만 우리나라역사 왜곡의 증서로 남겨 두었던 것이다.

한국의 고대사는 비록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권 밖에 없으나 이 두 권을 올바로 이해하고 삼국사기 地理志(지리지)에 기록된 지명을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처럼 한반도에 억지로 짜 맞추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탐색한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국의 4국은 한반도에서 개국한 나라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개국한 사실을 명확히 확인 할 수 있다.

즉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삼국사기 권 제 41 ” (열전 제1 김유신 상)에서 금관국(가락국,가야)의 首露王(수로왕)은 김유신의 12대조이고 9세손 구해(구충,구차휴)는 金庾信(김유신)의 曾祖(증조)가 된다. 신라의 國子博士(국자박사) 薛因宣(설인선)이 지은 김유신의 碑銘(비명)과 朴居勿(박거물)이 짓고 姚克一(요극일)의 글로된 三郞寺(삼랑사) 碑文(비문)에서 신라 사람들은 小昊金天氏(소호금천씨)의 후손이고 황제 軒轅(헌원)의 후예이다.

고구려 또한 高辛氏(고신씨)의 후손이다. 라고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우리민족의 기원을 분명히 밝혀져 있다. 그러나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중국대륙의 지명은 외면하고 자기 임의대로 註釋(주석)하여 이미 한반도에 지명으로 바꾸어 놓은 한반도의 지명과 억지로 짜 맞추고 신라는 황제헌원과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기록된 역사적 진실은 강력히 부정하고 마치 4국이 한반도에서 건국된 것처럼 국토를 한반도 속으로 축소하여 ≪반도 조선사: 우리나라의 영토를 한반도 속으로 쪼그라들게 만든 국사교과서≫를 만들어 한민족의 장래를 이끌고 갈 젊은 학도들에게 교육했던 것입니다.

상기와 같이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역사적 진실을 다 기록하여 [한민족의 정사]로 편찬하였으나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왜곡 편찬한 ≪반도 조선사:오늘날 국사≫에 중독된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삼국사기를 신뢰하지 않고 평가 절하 하고 부정적 관념을 갖고 김부식을 매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를 평가절하 하게 된 그 주된 원인은 한민족의 정사 삼국사기의 모든 지명은 실재로 중국대륙에 있었으나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삼국사기의 지명을 한반도 내로 짜 맞추어 반도조선사(왜곡된 국사)를 편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삼국유사”의 “ 고조선국 삼한 ”을 다스린 단군왕검을 신화로 조작하여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국유사의 단군을 신화로 부정한 그 원인은 해방 전 식민지시대에 일본인 학자에 의해 檀君(단군)을 부정적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고려 말 몽고의 침입을 받아 한민족이 피압박의 설움을 받고 있을 때 일연 스님이 백성들에게 희망을 심기 위해 佛敎徒(불교도)가 단군을 신화로 조작하여 만든 이름이다. 라고 일본인 학자가 논문을 발표하여 단군의 역사를 부정했던 것입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 총독이 감독하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이마니시와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신석호 등 이 '단군 조선을 신화'로 왜곡하고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를 말살한 역사적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된 요인이다. 더구나 유구한 우리나라 역사를 일제가 말살한 만행과 중국은 우리나라의 조상(3황5제)을 중국의 조상으로 둔갑시킨 역사적 진실을 오늘날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7천만 한겨레여...! 본 홈의 역사는 왜독, 中毒(중독), 西毒(서독)의 고질에서 벗어나는 약과 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