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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6.27    [hunwun.hwp]
   ◆ 중국의 3황5제는 우리나라 조상이다.

◆ 황제헌원, 염제신농은 여호와 하느님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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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국의 제5세 태호복희와 여호와 삼신상제.
禮記(예기)의 三皇五帝(3황5제)는 복희(여왜:여호와)-신농-황제헌원 ”을 삼황이라 하고 “-소호금천-전욱-고신-당요제-우순 ”을 5제라 한다. “복희와 여호와” 대를 상고시대,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의 대를 중고시대로 잡고 있다. 중국 3황5제의 역사적 진실을 살펴보자.

[구약성경의 여와(여왜)]을 “ 여호와 ” 라고 번역되어 있다. 서양 학자 존 브라이트(john bright)씨는 여왜를 [yahweh:야훼]로 기록하였다. “ 여호와 ”의 역사적 행적은 성경뿐 아니라 슈메르의 토판과 중국 신화시대의 왕조 삼황오제를 비릇 환단고기의 삼황본기의 기록은 女媧(여왜:여와) 女希(여희)로 기록되어 있으며 발음상 모두 꼭 같은 이름이다. 천주교(기독교) 등의 종교계에서 “ 하나님 아버지 ” 로 숭상하고 있는 “ 여호와 ”는 곧 태호복희씨의 부인이며, 여동생의 이름이 [여와:야훼:여호와]이며, 곧 여호와는 우리나라 조상이다. 또한 고대이래로 우리대한 민족은 三神(삼신: 마고 할머니)을 숭배하며 가정의 행복과 자식을 점지해 주기를 기원하였다. 인류의 어머니 마고 삼신할머니(산파여신)는 우리나라에서 숭배한 우리나라의 “ 하느님 ”이기 때문에 우리 대한민족을 天孫(천손)이라 불렀다.

마고(麻姑)는 궁희와 소희의 두 딸을 낳고 궁희씨는 황궁(黃穹)씨와 청궁(靑穹)씨를 낳고, 황궁씨는 유인(有因)씨를 낳고 유인씨는, 환국의 제 1세 거발환 환인(桓因)을 낳고, 환인은 배달국의 제 1세 居發桓雄(거발환웅)을 낳고 거발환웅은 제 2세 거불리환웅을 낳고 거불리환웅은 제 3세 우야고 환웅을 낳고 우야고는 제 4세 모사라 환웅을 낳았다.

배달국의 제 5세 태우의환웅(태호복희)과 女媧(여왜,야훼,여호와)는 황제헌원과 염제신농을 낳고 황제는 소호를 낳고 소호는 고신을 낳고 고신은 당요제를 낳았다. 염제신농은 火居(화거)를 낳고 화거는 節竝(절병)을 낳고 절병은 戱器(희기)를 낳고 희기는 祝融(축융)을 낳고 축융은 共工(공공: 인류의 대홍수를 일으킨 수신)을 낳고 공공은 術器(술기)를 낳고 술기는 后土(후토)를 낳고 후토는 열鳴(열명)을 낳고 배달국 제18세 居弗檀桓雄(거불단환웅(BC 2380-2333년)은, 임검(壬儉:BC 2370년)씨를 낳았다.

태우의환웅(태호복희씨)은 배달국 雨師(우사)의 직책을 맡아 六畜(6축)을 길렀다. 神龍(신용:여호와)이 날마다 열두 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河圖(하도)를 바탕으로 桓易(환역)을 만들었다. 당시 60갑자의 歲首(세수)를 癸亥(계해)로 사용했으나 세수를 갑자로 역법을 고쳤다. 후에 복희씨는 靑丘(청구)국과 樂浪(낙랑)국의 백성들과 有巢(유소)씨,燧人氏(수인씨)와 함께 西土(서토:중국의 서쪽 곤륜산:西域(서역)에서 도읍지를 陳(진)으로 옮겼다.

복희는 神市(신시:천산 곤륜산:에덴동산:天符都)에서 출생하여 陳(진)에 도읍을 정하고 震國(진국)을 개국하였다. 역대신선통감 권1 제 7절에서 “ 太皥帝出乎震(태호제출호진 : 태호황제는 신시에서 나와 震(진)국을 건국하였다. 震(진)은 震旦,震檀(진단)국이 된다.

태호복희씨의 姓(성)은 風(풍)씨이고 이름은 方牙(방아)이며, 혹은 蒼牙(창아)이고 이를 蒼精(창정)이라 하고 호를 春皇(춘황)이라 한다. 또한 복희씨의 號(호)는 皇雄(황웅)이고 어머니는 華胥氏(화서씨)이다. 복희씨의 여동생 여호와 역시 風(풍)씨이다. 복희와 여호와의 자손들은 風山(풍산)에서 나누어 살았기 때문에 성을 風(풍)씨로 하였다. 역시 후세에 풍씨 성이 나누어져 佩(패), 觀(관), 任(임), 己(기), 庖(포), 理(리), 姒(사), 彭(팽)씨의 여덟 가지 성씨로 나누어 졌다. 옛날에 복희와 여호와씨족이 지금 산서성의 濟水(제수)에 세웠던 나라 任(임), 宿(숙), 須(수), 句(구), 須臾(수유)족 등의 나라들이 있었다.

[역대신선통감과 강감금단]에서 태호복희가 죽은 후 그의 여동생 “여호와“가 무진(BC 3407)년에 왕위에 올랐다. 또한 태호복희가 죽은 뒤 여러 신하들이 ”여호와“를 임금으로 받들고 그를 女皇(여황)이라 불렀다. 그 시대 栢皇(백황) 선인이 衡山(형산:안휘성)에서 살았는데 祝融(축융:공공의 아버지)의 자손 莫坏(막배)를 “여호와 황제”에게 신하로 추천하여 여호와 황제는 막배와 함께 백성을 다스렸다.

또한 冀州(기주)의 백성을 救濟(구제)한 뒤에 柳城(유성:하남성)에 도읍을 정하고 笙簧(생황:음악기구 거문고)을 만들었다. 여호와는 15년을 재위하고 나이 143세에 죽었다. 여호와가 돌아가자 여러 신하들이 柏皇(백황)을 임금으로 삼았으나 백황은 왕위를 버리고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蒼頡(창힐)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나 창힐 또한 막배에게 왕위를 맡겼다. 여러 신하들이 莫坏(막배)를 임금으로 삼았으나 막배 또한 왕위를 사양하였다. 막배는 축융의 자손이다. 또한 무진년에 일어난 女媧(여왜,여호와) 황제부터 共工(공공), 栢皇(백황)...無懷(무회)등 임오년까지 15대의 임금이 194년을 다스렸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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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국의 제 5세 태우의환웅(태호복희)과 女媧(여왜,야훼,여호와)는 황제헌원과 염제신농을 낳고 황제는 소호를 낳고 소호는 고신을 낳고 고신은 당요제를 낳았다. 염제신농은 火居(화거)를 낳고 화거는 節竝(절병)을 낳고 절병은 戱器(희기)를 낳고 희기는 祝融(축융)을 낳고 축융은 共工(공공: 인류의 대홍수를 일으킨 수신)을 낳고 공공은 術器(술기)를 낳고 술기는 后土(후토)를 낳고 후토는 열鳴(열명)을 낳았다.

염제신농(BC 3218-3078)은 복희황제와 여호와의 맏아들이다.
염제신농을 姜水(강수:섬서성 기산현 서쪽)에서 길렀기 때문에 성을 姜(강)씨라 하였다. 염제신농은 火德(화덕:관명)으로 임금이 되어 아버지 복희를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렸기 때문에 炎帝(염제)라 불렀다. 염제는 열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열산씨, 여산씨, 또는 連山(연산)씨라 하였다. 염제신농이 멸망한 뒤에 州(주), 甫(보), 甘(감), 許(허),戱(희), 露(노), 齊(제), 紀(기), 怡(이), 向(향), 呂(여) 등은 모두 다 姜(강)씨 성의 후손들이다, 염제신농은 아들 다섯 명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딸의 이름이 女娃(여왜)이다.

염제신농은 원년 계미(BC 3218년)에 火德王(화덕왕)으로 陳(진)에 도읍 하였다. 지금의 開府(개부:태원)이고 陳州(진주)이다. 염제신농은 아버지 복희가 도읍한 陳(진)에서 도읍지를 曲阜(곡부)로 옮기고 140년 동안 재위하고 죽었다. 震國(진국,陳國)은 제 1세 복희와 여호와께서 개국하고부터 제 2세 맏아들 염제신농이 계승하고 제 3세 帝臨魁(제임괴), 제 4세 帝承(제승), 제 5세 帝明(제명), 제 6세 帝宜(제의), 제 7세 帝來(제래), 제 8세 帝衰(제쇠) 炎帝楡罔(염제유망(BC 2968년)에 이르기까지 무릇 530년이고 염제유망이 멸망한 후에 황제헌원씨가 일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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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헌원의 출생은 다음과 같다. 태호복희 상제의 부인 神母(신모:여호와)가 어느 날 하루 저녁에 하늘 복판에 북두칠성을 에워싼 금빛을 보고 황제헌원을 임신하여 24개월 만에 有熊(유웅: 하남성 신정)의 남쪽 헌원(하남성)에서 낳았기 때문에 軒袁(헌원)이라 이름지었다.

황제헌원은 복희씨의 둘째 아들이며, 성은 姬(희)씨이고 후에 성은 公孫(공손)이다. 헌원의 호는 有熊氏(유웅씨), 또 縉雲氏(진운씨), 또 帝鴻氏(제홍씨), 또 帝軒氏(제헌씨)이다. 夏(하)나라 9세대를 전하고 啓昆(계곤 :우 임금의 아들) 시대에 이르러 헌원은 북쪽의 熊(웅)에서 지금의 開封(개봉:하남성) 新鄭(신정:하남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有熊國(유웅국)으로 고쳤다. 有熊國(유웅국)의 임금 황제헌원은 土德(토덕)의 직위를 받았는데 흙의 색은 황색이므로 黃帝(황제)라고 칭하였다.

복희와 여호와의 둘째 아들 황제헌원(황제유웅)은 부인이 4사람이고 아들이 25명이 있었다. 황제의 맏아들은 玄囂(현효:소호)이며 둘째 아들이 昌意(창의)이다. 창의의 아들이 顓頊(전욱(전욱고양(BC 2513-2436)이다. 昌意(창의)의 어머니는 촉산씨의 딸로서 이름은 女樞(여추)이다. 전욱은 궁선과 곤을 낳고 鯤(곤)은 禹(우)임금을 낳았다. 또한 전욱은 老童(노동)을 낳고 노동이 重(중)과 黎(려)를 낳았다. 배달국 제 6세 다의발 환웅(천제 여호와 삼신 상제)은 重(중)에게 명령을 내려 하늘을 들어 올리게 하고 黎(려)에게 명령을 내려 땅을 아래로 억누르게 하여 땅이 噎鳴(열명)을 낳았다. 열명은 서극에 살면서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을 주관하는 시간의 신이다.

전욱의 아들 고신왕은 4사람의 부인이 있었다. 고신왕(황제의 증손자)의 첫째 부인은 유태씨의 딸로서 이름은 姜源(강원)이다. 강원은 后稷(후직)을 낳고 후직이 곧 周(주)나라 시조가 되었다. 둘째 부인은 有娥(유아)씨의 딸로서 簡狄(간적)이며 卨(薛:설)을 낳았다. 卨(설)은 殷(은:商(상)나라 시조가 되었다. 셋째 부인은 陳鋒(진봉)씨의 딸이며 이름은 慶都(경도)이다. 이 경도 부인이 낳은 아들이 防勳(勛:방훈)이며 곧 중국의 유명한 堯(요) 임금이다.

고신왕의 넷째 부인은 娵訾(추자)씨의 딸로서 아들 常儀(상의) 摯(지)가 왕위에 올라 9년을 재임하고 백성들로부터 쫓겨나고 경도 부인이 낳은 唐堯帝(당요제) 堯(요:BC2357-2258)임금이 갑진(2358년)에 왕위에 올라 BC 2258년까지 100년 동안 재임했다. 요임금은 고신왕의 막내아들이며 이름은 放勛(방훈)이며 혹은 伊祁氏(이기씨)라고 한다. 陶唐氏(도당씨) 부락의 추장이다. 이로 인해 唐堯(당요)라고 불렀다. 九夷族(구이족)의 자손이며 黎國(여국:치우천왕)의 변란시에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조선국 삼한의 유호씨(고수)의 아들 虞舜(우순:BC 2255-2208)이 병신년(BC 2285)부터 28년 동안 요임금의 나라를 섭정하고 병술년(BC 2255)부터 계유년(BC 2208)까지 50년 동안 재위하고 110살에 죽었다.

순임금은 高叟(고수 : 유호씨(有戶氏)의 아들이고 고수는 高矢禮(고시례)의 친형이다. 고시례는 환웅천왕의 신하로서 主穀(주곡)을 담당하는 農士(농사)이다. 유호씨(고수)의 아들 순이 檀朝(단조:단군조선)에서 벼슬하지 않고 천부도를 폐지한 이웃나라 唐堯朝(당요조(BC 2357-2258)에서 벼슬을 하므로 父子(부자)간에 의견이 서로 달라 화목하지 못하자 작은 아들 象(상)을 사랑하고 순을 죽이고자 하였다. 순이 아버지의 뜻을 배반하고 唐堯(당요)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자 요임금은 舜(순)을 신임하고 왕위를 물려주었던 것이다.

배달국 제18세 居弗檀桓雄(거불단환웅(BC 2380-2333년)은, 임검(壬儉:BC 2370년)씨를 낳았다. 거불단 환웅씨의 아들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천부도(天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여 곧 동북 쪽 자방(磁方)이었다. 이 때에 도요(陶堯:요임금)가 천산(天山)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마고성을 나간 사람들의 후예들이다. 일찍이 조선제시(祭市)의 모임에도 왕래하며 서쪽 보간(堡干)에게 도(道)를 배웠다. 요가 곧 9주(九州)의 땅을 그려서 당도(唐都)를 세우고 스스로 5중앙의 제왕이라 칭하며, 조선의 부도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피고 지는 명협(蓂莢)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지하고 부도(符都)의 역을 버렸다. 이는 인간 세상에서 두 번째의 큰 변이었다. 이에 임검씨가 심히 걱정하여, 유인씨(有因氏)의 아들 유호씨(有戶氏) 부자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등 100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요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하고, 공순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에서 살게 하였다. 이때에 요임금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속에 다른 뜻을 가지고 有舜(유순)에게 국사를 맡기고, 두 딸로 도와주며 유혹하게 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은 일찍이 조선국의 천부도 법을 집행하는 환부가 되어 있었으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무절제한 생활로 요의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요임금은 열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丹朱(단주)는 不肖(불초)하고 성품이 괴팍하고 행동이 거칠어 단주의 성품을 바로 잡아 보고자 <바둑>을 처음으로 만들어 가르쳤으나 못된 성품은 고쳐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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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오직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 밖에 없는 것은 공지의 사실입니다. 일제는 우리나라 국사를 가장 공정하게 편찬 한다는 미명으로 한국의 국내는 물론 중국 각처의 고대 사료를 수집하여 무려 20만 권을 불태워 없애고, 오직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권만 우리나라역사 왜곡의 증서로 남겨 두었던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를 우리나라의 정통사서로 부정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권을 근간으로 조국을 배신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신석호 등이 오늘날의 “국사교과서”를 편찬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국사는 일제식민지시대에 조선사편수회의 일본인 이마니시와 동경제국대학의 이케노우치(池內宏)등 20여명의 일본인 학자와 조국을 배신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신석호 등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을 증서로 삼아 " 고구려, 백제, 신라 "의 3국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왜곡 조작하고 광활했던 삼한과 삼국의 영토를 한반도 내로 쪼그라들게 [한국의 국사교과서]를 편찬했던 것이다.

한국의 고대사는 비록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권 밖에 없으나 이 두 권을 올바로 이해하고 삼국사기의 地理志(지리지)에 기록된 지명을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처럼 한반도에 억지로 짜 맞추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탐색한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국의 4국은 한반도에서 개국한 나라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개국한 사실을 명확히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삼국사기 권 제 41 " [열전 제1 김유신 상]에서 금관국(가락국:가야)의 首露王(수로왕)은 김유신의 12대조이고 9세손 仇亥(구해)왕은 김유신의 증조가 된다. 신라사람들은 자칭 少昊金天(소호금천)씨의 후손이므로 성을 김씨라 한다. 金庾信(김유신)의 비문에도 軒轅(헌원)의 후예이며, 소호의 종손이며, 南伽倻(남가야)의 시조 首露王(수로왕)과 신라와 같은 성씨이다.

신라의 國子博士(국자박사) 薛因宣(설인선)이 지은 김유신의 碑銘(비명)과 朴居勿(박거물)이 짓고 姚克一(요극일:侍中(시중)겸 侍書(시서)학사)의 글로된 三郞寺(삼랑사) 碑文(비문)에서 신라 사람들은 小昊金天氏(소호금천씨)의 후손이고 황제 軒轅(헌원)의 후예이다. 고구려 또한 高辛氏(고신씨)의 후손이다. 라고 김부식은 황제헌원은 중국의 조상이 아니고 우리나라 조상이다. 라고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 역사를 뚜렷이 기록하였다. 지금 한민족은 삼국사기에서 황제헌원이 우리나라 조상이란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 했을 것이다.

조국을 배신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는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 제 6, 광개토대왕]에서 北燕(북연)은 고구려의 후예로서 같은 종족이 된다. 의 譯註(역주)에서 이르기를 이는 마치 金庾信傳(김유신전) 및 百濟紀末(백제기말) 史論(사론)에 신라인이 자칭 少昊金天氏(소호금천씨)의 후예라 하였다. 고로 성을 金氏(김씨)라 하였다. 함과 사기 흉노전에서 흉노의 그 선조는 夏后氏(하후씨)의 후예라 함과 같은 따위의 유례로 고구려인이 어떠한 정책상으로 그런 標榜(표방)을 하였는지도 모를 것이다. 라고 김부식을 매도하는 기사로 되어있다.

조국을 배신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는 상기와 같이 역사적 진실은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삼국사기의 譯註(역주)에서 모든 地名(지명)을 임의대로 조작했던 것이다. 또한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및 가락국의 4국은 중국 대륙에서 개국한 사실을 뚜렷이 기록하였다. 고구려 본기 제 1에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은 천제 解慕漱(해모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河伯(하백)의 딸이다. 라고 고구려 보다 먼저시대 해모수의 북부여시대를 명확히 기록하였다. 그러나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는 마치 삼국시대부터 우리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왜곡하고 신라의 도읍지는 경북 경주로 비정하고 고구려는 평양으로 백제의 도읍지는 경기도 하남으로 가락국은 경남 김해로 도읍지를 비정하여, 마치 4국의 강역이 한반도내에서 건국된 것처럼 축소, 조작, 왜곡하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역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완전히 삭제하고 [국사교과서]를 편찬하여 한민족의 장래를 이끌고 갈 젊은 학도들에게 교육했던 것이다.

7천만 한겨레여...!
중국은 우리나라의 3황5제를 중국의 조상으로 둔갑시키고,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는 우리나라 역사를 말살, 왜곡, 조작시켰기 때문에 우리역사는 뒤틀리고 한민족은 착각했던 것이다. 황제훤원은 중국의 조상이 아니고 우리나라 조상이다.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은 일제가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말살하고, 국사를 왜곡 변조한 산물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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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만 한겨레여...!
왜독에서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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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역사는 없다.
다만 九夷(9이:환국 우리나라)에서 파생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