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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30   
   고종 “을사늑약 원천 무효” 밀서

고종 “을사늑약 원천 무효” 밀서 1906년 독일 황제에게도 보냈다

 

[중앙일보 정용환]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이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1905년)의 부당함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1906년 5월 독일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가 처음 발견됐다. 고종이 1907년 6월 이준 열사 등을 통해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보냈던 밀서보다 1년1개월 빠른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03년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던 한국 관련 외교문서를 복사해 번역·해석해 오던 중 19일 정상수 명지대(독일사) 연구교수가 처음 이 밀서를 확인했다.

고종은 1906년 1월 을사늑약이 원천 무효임을 강조한 국서를 만들어 영국 신문인 런던 트리뷴지의 더글러스 스토리 기자를 통해 여러 서구 열강에 보냈다. 이 사실은 1906년 12월 이 신문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고종이 별도로 친서를 독일 황제에게 보낸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고종 황제의 어새(御璽·옥새의 높임말)가 찍힌 이 밀서는 국서와 별도로 보낸 친서이며, 주권을 수호하려는 고종의 외교적 노력을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사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밀서에는 1906년 1월에 쓰인 것으로 적혀 있다. 정 교수가 독일 외교문서를 확인한 결과 한문으로 쓰인 이 밀서는 당시 고종 황제의 측근이던 프랑스인 정무 고문 트레믈러를 통해 1906년 5월 독일 외교부에 전달됐다. 독일 정부의 동양어 전문 자문관이던 포르케 교수가 독일어로 번역했다. 독일 정부가 고종 어새를 감정한 결과 진짜로 확인됐다. 당시 독일 외교부는 독일에 불리한 국제 정세를 이유로 밀서를 빌헬름 2세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덕국(大德國·독일) 황제 폐하’라고 적힌 봉투에 담겨 전달된 밀서는 전문 2쪽과 고종 어새로 구성됐다. 다음은 밀서 요약.

“ 짐(본인)은 대덕국의 호의와 지원을 항상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에게 파국이 닥쳐왔습니다. 이웃 강대국(일본)의 공격과 강압성이 날로 심해져 마침내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독립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짐은 폐하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약자의 보호자로서 본국의 독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폐하의 우의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짐과 조선의 신민은 귀하의 성의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합니다. 광무 10년(1906년) 1월 경운궁에서. 폐하의 좋은 형제.”

[중앙일보 정용환]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고종 황제의 외교 발자취를 입증하는 사료다.”

고종의 친서를 연구해온 서울대 이태진(국사학·사진) 교수는 고종이 을사늑약 이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고종의 밀서가 1906년 1월 30일로 예정된 일제의 통감부 설치를 앞두고 구국을 위한 외교 노력을 펼쳤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을사늑약의 원천 무효를 주장한 고종의 친서는 ▶1906년 1월 29일 작성된 국서 ▶1906년 6월 22일 헐버트 특별위원에게 건넨 친서 ▶1906년 6월 22일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 이상설에게 준 황제의 위임장 등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독일 황제에게 보냈나.

“황제 어새가 찍힌 이 친서는 1906년 1월 유럽 각국 정부에 보낸 국서와 짝을 이루는 문서다. 두 문서는 고종의 외교 노력이 입체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서에서 고종은 일제의 강점을 피하기 위해 서구 열강의 5년 기한 공동보호도 수용하겠다는 카드를 던졌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선의 수교국이었던 독일의 황제에게 친서를 보내 지원을 호소한 것이다. 문서를 읽어보면 국권 침탈의 벼랑 끝에서 몸부림친 군주의 고뇌가 읽힌다.”

-국서에는 어떤 도장이 찍혔나.

“대한제국 황실의 공식 국새인 ‘대한국새’가 찍혀 문서의 내용이 황제의 뜻이라는 것을 공인했다.”

-어새 위에 적힌 한자는 무엇인가.

“고종의 이름이다. 경이라고 읽는다.”

-어새가 찍힌 문서의 성격은.

“어새가 찍힌 문서는 지금까지 6개가 발굴됐다. 이번에 한 건이 더 추가된 것이다. 어새는 주로 밀서에 찍혔다. 일제의 국권 침탈에 대비해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에게 조·러 연합작전을 제안하는 등 특급 국가기밀을 다룬 문서에만 찍힌다. 어새와 함께 ‘한성에서 이경’ 또는 ‘경운궁에서 이경’ 이런 사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에서도 같은 형식을 취했다.”

-또 다른 고종의 친서가 나올 가능성은.

“국서가 영국 기자에게 전달됐다는 점에서 당시 유럽 수교국이었던 프랑스·벨기에에도 친서가 보내지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당시 중립국이었던 벨기에는 조선 정부가 추진한 중립국의 모델이었다.”

정용환 기자

◇을사늑약(乙巳勒約)=1905년 11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고종과 정부 대신을 위협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 쌍방의 조건이 대등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 있는 강자의 강요에 의해 체결됐기 때문에 ‘늑약’이라고 부른다.

◇헤이그 밀사 사건=1905년 일제가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1907년 고종이 이준 열사 등에게 친서와 신임장을 주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한 사건.


출처 :동아역사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 선바위




 

고종(高宗) 황제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열강에 호소하기 위해 보냈던 여러 친서(親書)들 중 한 건이 독일에서 새로 발견됐다. 이로써 당시 고종이 외국 열강에 보냈던 친서는 모두 17종으로 늘어났다.

 

정상수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독일사)는 최근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던 고종의 친서(사진)를 찾아냈다고 20일 밝혔다.

 

1906년 1월 고종이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보낸 이 밀서는 '대덕국(大德國·독일) 황제 폐하'라고 적힌 봉투에 담긴 2쪽 분량의 서한이며, 고종의 어새(御璽)가 찍혀 있다.

 

"이웃 강대국(일본)의 공격이 심해져 마침내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독립을 위협받고 있다. 짐은 폐하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약자의 보호자로서 본국의 독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폐하의 우의를 기대한다"는 내용을 적었다.

 

이 친서는 고종의 측근이었던 프랑스인 트레믈러(Tremoulet)가 1906년 5월 말 독일 외교부에 전달했지만 독일 외교부의 담당 관리들은 친서를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정 교수는 "당시 독일은 프랑스로부터 모로코의 독립을 보장하려다 1906년 4월 실패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 문제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견된 당시 고종의 친서는 1906년 6월 헐버트(Hulbert)를 통해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벨기에·청국의 9개국에 전달하려 했던 것 등 어새가 찍힌 것만 모두 16종이다.

 

유석재 기자 Copyrights ⓒ 조선일보

 

고종황제 말년의 어진


고종(1852~1919)이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코자 독일 황제에게 보낸 102년전 친서가 발견됐다. 국사편찬위원회와 명지대 정상수 교수(독일사)가 독일 외무부에 요청, 한국 관련 문서들을 확인하던 중 조선의 독립을 요청한 고종의 밀서를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1907년 1월 고종이 영국 트리뷴 신문의 더글러스 스토리 기자를 통해 서구열강에게 전달한 을사늑약 무효주장 밀서보다 1년여 앞선 것이다. 1906년 1월에 쓴 고종의 이 편지는 을사늑약과 관련, 황제가 직접 외교활동을 펼친 첫 번째 문서로 추정된다.

 

정 교수는 독일 외무부 정치문서 보관소에 쌓여 있는 자료들을 검토하다가 빌헬름 2세(1859~1941)에게 보낸 고종의 친서를 발견했다.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독일어 해석과 고종의 어새(御璽) 등 검증과정을 거쳤다.

 

“짐(본인)은 대덕국의 호의와 지원을 항상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에게 파국이 닥쳐왔습니다. 이웃 강대국(일본)의 공격과 강압성이 날로 심해져 마침내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독립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짐은 폐하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약자의 보호자로서 본국의 독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폐하의 우의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짐과 조선의 신민은 귀하의 성의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합니다. 광무 10년(1906년) 1월 경운궁에서. 폐하의 좋은 형제”

 

독립을 위협받은 상황을 전하는 한편,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독립을 보장해달라고 청하는 내용이다. 편지를 낸 시점은 독일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될 위기에 처한 모로코의 독립을 선언한 직후였다. 고종이 왜 독일 황제에게 편지를 보냈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 교수는 봉투 겉면에 ‘대덕국(大德國·독일) 대황제 폐하’라고 적었다는 점도 주목했다. “우리나라국왕이 독일 황제를 ‘대황제’라고 존칭했다는 것은 독일을 사대했다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밀서는 빌헬름 2세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독일 정부는 ‘황제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다’며 보고하지 않았다. 독일의 모로코 선언이 국제회의에서 묵살된 1906년 5월 이후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을사늑약은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체결한 조약이다. 을사조약, 제2차 한일협약, 을사 5조약 등으로도 불린다.

 

윤근영기자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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