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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18   
   ★ 조선왕조 사진전 ★




★ 조선왕조 사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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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환상곡

 



 

홍지문은 한북문이라고도 하는데,
인왕산 뒷 편 끝자락에 있는
탕춘대성의 성문이다.
홍지문 문루와 오른쪽의 홍지문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풍속 사진.
‘조선 풍속’엽서에 실린 사진 중 상당수는
스튜디오에서 조선인 모델을 고용해
찍은 것으로 추측된다.
무대 배경에는 서구식 장식물이 등장하고
조선인 모델들은 촬영자의 의도에 맞게
연출되어 풍속 이미지로 팔려나갔다.
회식(우편엽서)




숭실학교 학생들




서광범




국민소학독본






혜화문과 성곽




서울 60리 둘레를 현무도의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호위하고 있는 한양의 도성은 애초 남산과 북악산을
제외하고는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
이것을 세종이 모두 돌로 쌓았으니,
연 인원 32만 2,400명이 동원되어 98일만에 완성을 보았다.
대규모 인력 동원을 통한 단기의 공사였다.
옛 법도대로 따르자면 성곽은 사각형 모양이 되어야 하겠지만
한양의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짓다보니
굽이굽이 산성이 되어 물결쳤다.
성곽의 기본 출입문은 동·서·남 ·북의 4대문이었으나,
이외에도 4소문과 그 밖의 여러 문이 있었다.
4소문은 혜화문·창의문·소의문·광희문이다.
그 가운데 광희문은 수구문(水口門),
또는 시구문(屍口門 : 시체가 나가는 문)으로 불려졌다.
조선시대에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는 반드시 서쪽은 서소문으로,
동쪽은 광희문으로 나가게 하고,
다른 문으로는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시구문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수구문이라는 명칭은 청계천
수문 근처를 통해 성 밖으로 흘러나가고,
남산의 물이 광희문 부근을 통과하여
나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에서는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유행하면
환자들을 광희문 밖에 내다 버리곤 하였다.
이에 시골 사람들은 “한양에 가거든 수구문 돌담의
돌가루를 긁어 오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광희문 밖 돌가루가 병마를 물리치는데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광희문이란 이름보다 수구문
또는 시구문이라 불렀다.
그리고 ‘못된 바람은 시구문으로 분다’는 말도 있었다.
또 다 죽게 된 사람을 ‘시구문 차례’라고 했으니,
양반은 물론 보통 사람도 이 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도성(인왕산 곡성)




1890년대 보신각






윤치호
박영효와 윤치호




마패




남대문(숭례문)




궁녀




경복궁과 육조거리




숭례문(남대문)




왼쪽부터 영친왕.순종.고종.귀비엄씨.덕혜옹주.

이 사진은 한국 사진의 선각자이자 흥완군(대원군의 형)의 손자인
고 이해선(순종의 육촌 형제, 민영환의 사위) 선생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다.
출처 : 대한사진예술가협회
구한말 고종,순종,영친왕..구한말 황실




육상궁(毓祥宮)은 원래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봉사하는 사당이었다.
1908년에 저경궁 · 대빈궁 · 연우궁 · 선희궁 · 경우궁이
합사되어 6궁으로 불렸으며,
1929년에 덕안궁이 경내로 옮겨와 7궁이 되었다.
육상궁




조선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된 후 거처하던 곳이다.
영조가 감고당 편액을 내렸고,
명성황후가 책봉되기 이전에 거처하기도 하였다.
감고당(感古堂, 현 안국동 덕성여고 자리)




전란 등 비상시 왕이 거처하기 위해 지은 행궁이다.
북한산성 행궁




사도세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
현재의 서울대학교 병원자리
경모궁의 일부




창덕궁




경운궁(덕수궁)




1892 창경궁과 홍화문




서울 - 천변(川邊)마을




뒤에 보이는 다리가 수표교.
서울은 지형적으로 북쪽에 산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 하천들은 도심을 흘러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도성 안을 흐르는 하천들은 청계천을 비롯하여 중학천 등이 있었다.

서울 -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1940.01.01 일장기를 제호 위에 올리고
일황부부사진을 실은 조선일보 신년호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한국 주재 일본군 사령관(오른쪽)

1905.11.29 경성역 - 일본정부 칙사로 조선을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




포도청은 1895년 경무청이 설치될 때까지 조선왕조에 경찰기관이다.
1890 포도대장




한말 훈장과 학동들




한말 대구 - 서문시장




한말 서울 소공동 - 사진관




한말 서울 - 싸전거리




한말 인력거




1909 전주 - 신흥학교 수업 광경,

안창호가 설립한 평양대성학교 교사와 학생들




명성황후의 시신이 홍농 장지로 떠나기 전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기념촬영한 것이다.
1899 슬픔에 잠긴 고종황제




강화도 초지진 포대





1876 전차에 오르는 승객들




장춘단
장충단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순절한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과 궁내부 대신 이경직(李耕稙) 이하
왕실을 위해 충절을 바친 여러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제사단이다.
1908년 일제는 제사를 폐지시키고
이 일대를 공원으로 만들었다 3




어가행렬




융희 2년(1908) 장충단에서 거행되었다.
가운데 좌우로 서있는 사람은 조희연(趙羲淵)과 김윤식(金允植).
1908 갑신정변 을미사변 관련 희생자 추도회




마지막 황제 순종과 대신들




1902 고종의 칙명




원구단 일대




1910 짐꾼들




1910 지게로 옹기를 나르는 사람




1910 지게로 옹기를 나르는 사람




1904년경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정공 민영환의 컬러 유리원판 사진.

1904
민영환



1910 젖을 먹이고있는 여인들





1908 서당의 서동들




1910 상류층 부인을 태운 가마




1908 상류부인과 규수




1910 빨래터에 가는 여인과 아이




1910 물지게꾼




목재를 파는 소




목재를 나르는 소




오라버니에게 심신의 아픔을 절절히 적어 보낸 명성황후의 편지 두 통.
청나라제 예쁜 색지에는 대나무와 꽃이,
편지 봉투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다.
1874 명성황후의 편지




1908~10 서울 신사들




1908~10 빨래터




조선여인(우편엽서)




1903 조선여인(우편엽서




도성 동남쪽에 위치한 4소문의 하나이다.
문의 좌우 성벽은 일제 때 헐렸다가
1975년 남쪽으로 15m 옮겨져 복원되었다.
1892 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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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kichkk@paran.com

★구하기도 보기도 힘든 사진들 입니다★(08.3.18.화)
구하기도 보기도 힘든 사진들 입니다.
중공군 종군 사진기자가 찍은 것으로 추측 됩니다.




함께 일하는 옛 전쟁터에서 다시 봄날이 왔다.




짚차를 타고 도주하던 미군 병사들(차 양쪽의 손을 든 사람들)을

  사로잡은 중공군 병사들.




중국 인민지원군의 시각으로 기록한 한국전쟁 사진집이 나왔다.

<영광스런 중국 인민지원군>(중국 해방군화보사, 1959년)의
사진과 사진설명을 따서 펴낸 [그들이 본 한국전쟁](눈빛출판사)이 그것.
원저는 중국 인민군이 북한에서 완전히 철수한 뒤,
그들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홍보를 위한 시각이 다분하지만 압록강 도하,
그들에게 잡힌 미군포로, 인해전술때 불어제낀 날라리,
폭격을 피하기 위한 물밑다리 등 우리 쪽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전쟁의 나머지 반쪽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전쟁 끝 무렵 후방에서 북한의 전후 복구사업에
뛰어들어 활동한 사실은 이채롭다.
전투가 없는 날 중공군 병사들이 민가 아낙네의 
봄 밭갈이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북한 위문단이 지원군 시공부대에 와서 화려한 공연을 펼쳤다.



전쟁이 끝난 뒤 재건사업에 투입된 중국군 병사들이 
북한 주민들과 함께 포탄 구덩이들을 메우고 있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장면.



북한 주민들이 포화를 무릅쓰고

지원군을 위해 밥과 물을 나르고 있다.



1951년초 눈 덮힌 강원도 횡성지역에서

진군 나팔소리에 맞춰 돌진하는 중국군 병사들.





김일성이 직접 중공군 1차 귀국 부대를 송별하고 있다.





한 노인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갓을

지원군에게 작별 선물로 주고 있다.





1951년초 서울에 입성한 중공군과 북한군 병사들이 
중앙청 앞에서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압록강변의 국경도시 신의주에서 열차로 

압록강 철교를 건너는 중공군 귀국장병들을 환송하는 

북한 주민들.



북한의 한 노인이 지원군에게 길 안내를 하고 있다.





군대와 함께 출정한 중국 민간인 수송대의 우마차 행렬이 

눈밭 속에서 전쟁물자를 실어나르고 있다
카페 이름 : 사랑 정열 그리움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don817
카페 소개 : 정렬에 불타는사랑을 함께나누는 그리운 님들이 모이는 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