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방명록 > 방명록
 
   2007.07.22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일주일`


뇌종양 지현숙씨 `마음 속 아들` 필리핀 소년 만나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일주일`


2007년 6월 10일 인천공항 출국장 앞.
지현숙(56)씨는 레노르 바산(16)을 오랫동안 끌어안더니 끝내 눈물을 흘렸다.

레노르는 "울지 마세요. 다시 만나요"라며

연방 지씨의 눈물을 닦았다.

한참을 껴안고 있던 지씨를 뒤로하고

레노르는 출국장 안으로 사라졌다.

피부색과 말이 다른 양아들 레노르를 떠나보낸

지씨는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1주일"이라고 말했다.


지씨가 전기도 안 들어오는 필리핀의 외딴 섬 마스베이트 소년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초. 국제 어린이 후원단체인 플랜코리아의 해외아동 결연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레노르를 소개받았다.

지씨는 남을 도울 형편이 아니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10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다.

딸(25)이 매달 보내주는 3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근근이 살아가던 어느 날 TV에서 해외 아동구호 프로그램을 보고 '그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한다.

"두 개 먹을 거 하나만 먹는다"는 생각에 매달 3만원의 후원금을 거르지 않았다.

그 돈이면 레노르가 학교에서 공부하고 끼니를 거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때론 부질없다는 생각에 그만둘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그때마다 '덕분에 잘 지낸다' '공부가 재미있다'는 레노르의 편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2005년 지씨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그는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다니던 봉제공장도 그만뒀지만 어려운 살림을 쪼개 적금을 부었다.

레노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후원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플랜코리아 측이 레노르의 한국 방문을 추진했다.

5일 사진에서만 보아온 레노르가 눈앞에 나타나자 지씨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곤 '진짜 엄마'가 됐다.

손을 잡고 시장에 나가 운동화를 골라주고, 인사동에서 기념품도 사줬다.

놀이동산에서 실컷 웃기도 하고, 따뜻한 저녁상도 차려줬다.

레노르는 지씨를 "엄마"라고 불렀다.

지씨는 "사진 속에선 꼬마였는데 키가 몰라볼 정도로 컸다"며 대견스러워 했다.

5박6일은 그렇게 꿈같이 흘러갔다.

지씨는 수술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새 종양이 조금씩 커지면서 지씨의 안면마비 증세가 더 심해졌다.

그러나 지씨는 "꼭 건강을 되찾고 돈을 모은 뒤 레노르를 만나러 필리핀에 가겠다"고 말했다.

레노르를 돕는 이유를 물었다.

지씨는 "사랑은 부메랑과 같아서 결국은 나에게 행복이 돌아온다"며 웃었다.

[중앙일보 2007.06.11]

장주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