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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20   
   國寶와 寶物은 어떻게 다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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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寶와 寶物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 나라의 국보 제1호는 남대문이고, 보물 제1호는 동대문이다. 남대문과 동대문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는 국보와 보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국보와 보물은 모두 문화재에 속한다.

문화재란 말은

'민족문화의 유산으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재청장이 지정하여 보존 관리하는 문화재를 보물과 국보라 하고

그리고 시·도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하여 보존 관리하는

문화재를 시·도 유형문화재라 한다

문화재 명칭 밑에는 그 문화재의 격이 기록되는데

국보 제△호·보물 제△·중요무형문화재 제△호·천연기념물 제△호

·사적 제△호·중요민속자료 제△호·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호 등등이 그것이다

국보 제1호와 제2호처럼 문화재의 일련번호는

그 문화재의 가치 높낮이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오로지 지정된 순서만을 나타낼 뿐이다.

참고적으로,

남대문을 국보로 지정하고 동대문을 보물로 지정한 이유는

1395년에 세워진 남대문이 1396년에 세워지고

1896년에 개축된 동대문보다 건축년도가 빠르고,

또 남대문이 가지는 정문으로서의 의의와

건축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비중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寶物 1호  서울 흥인지문


동대문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가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寶物 402호 팔달문 (경기 수원시)

 

 수원성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정조 20년(1796)에 완성한 성곽이다.

중국성의 모습을 본뜨기는 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을 쌓아 훨씬 발달한 모습을 하며

한국 성곽을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이다.

 

寶物 308호 풍남문(전북 전주시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豊南門)’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寶物 322호  관덕정 (제주도 제주시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따온 말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누정 건물은 『탐라지』에 의하면

조선 세종 30년(1448)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

성종 11년(1480) 목사 양찬이 고친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寶物 147호   밀양 영남루

 

 

 


 

 



 이 건물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곳으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통일신라 때 있었던 영남사라는 절터에 지은 누로,

절 이름을 빌어 영남루라 불렀다.

그 뒤 여러 차례 고치고 전쟁으로 불탄 것을 다시 세웠는데,

지금 건물은 조선 헌종 10년(1844)

밀양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은 것이다.

寶物 165호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寶物209호  회덕동춘당 (대전 대덕구)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선생의 별당(別堂)이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同春堂)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寶物210호  도산서원전교당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그 중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寶物 211호 도산서원 상덕사 부정문및사주토병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이황 선생은 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신으로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평생을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쓴 분이다.
도산서원 제일 뒤쪽에 있는 상덕사는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수리한 것이다.

寶物213호   삼척 죽서루

 


 

이 건물은 고려 충렬왕 1년(1275)에

대학자 이승휴 선생이 세웠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寶物 835호  운문사 대웅보전



신라시대에 세운 운문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지금의 절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있었던 네 번째 보수 때의 것이다.
대웅보전도 이때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寶物 400호 선암사  승선교

 

선암사의 부도(浮屠)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승선교이다.

시냇물의 너비가 넓은 편이라서 다리의 규모도 큰 편인데,

커다란 무지개 모양으로 아름답게 놓여있다.  

寶物214호  강릉 문묘 대성전

 

강릉향교는 옛 성현께 제사를 드리고 학문을 갈고 닦는 곳으로,

성균관을 제외한 지방 향교로는 규모가 가장크다.
고려 충선왕 5년(1313) 강릉 존무사(存撫使)였던 김승인이 세웠다

寶物 281호  광한루 (전북 남원시)

 
 

 
 


 

이 건물은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넓은 인공 정원이 주변 경치를 한층 돋구고 있어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寶物 414호 충효당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유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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