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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7.21   
   반도조선사 이렇게 만들어 졌다.

반도조선사 이렇게 만들어 졌다.
1910년 일황 칙령 제 319호로 초대 조선총독에 취임한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한민족정기를 말살하는 과업을 제1 국책으로 삼고 1910년 11월부터 전국의 각 도,군, 경찰서를 동원하여 1911년 12월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전국 서적을 색출해서 단군조선관계 고사서 등 51종 20여만 권의 사서를 수거했다.

1915년 『반도조선사 편찬과』를 설치하고 일인 역사학자와 한국 측은 역사학자가 아니고 친일 정객 이완용, 박영효, 이윤용, 권중현 등 역적을 임명하여 한국의 역사 왜곡 작업에 착수했다. 1922년 12월 4일 훈련 제64조로 [반도조선사편찬위원회]를 새로 제정하여 다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개명하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15명의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22년 일인 학자 요시다(吉田東伍), 동경제국대학의 이케노우치(池內宏), 와세다대학의 츠다(津田左右吉), 동경제국대학 구로이다 가쓰미(黑板勝美), 경도제국대학 미우라(三浦周行) 교수, 경도제대 이마니시(今西龍), 경성제대 교수 쇼우다(小田省吾), 편찬실무자 스에마쓰(末松保和)등 8명의 관계자들이 연 122일 동안 중국을 출장하고, 23년에는 17명이 연204일 동안 중국을 출장하고, 24년에는 12명이 연 176일, 25년에는 15명이 연200일 동안 중국 대륙 각처를 누비며 조선 사료를 찾아내고 심지어 한국의 역사적 증서가 될 [광개토대왕 비문]과, [모두루비문] 등 모든 비문의 글자마저 훼손시키고 돌아왔다.

1925년 6월 일황 칙령 제218호로 조선사편수회 관제를 제정 공포하고 조선총독이 직할하는 독립 관청으로 승격시키고 [조선사편수회] 사무소를 총독부 중추원에 두고 1925년 10월 8일 제1회 위원회를 개최했다. 총독은 편찬사료 탐방이란 이름으로 중국 전역에 파견했던 일인 학자 관계자들을 독려하는 한편 한국의 전국 도․군․경찰서 등 관청에 협력토록 강력히 지시했다. 초기의 조선 관계 자료의 수집은 강제 수색․압수가 성과를 거두었으나 수장자들이 비장한 자료를 수집하지 위해서는 대여 형식으로 그 방법을 완화했다.

『조선반도사』 편찬 실무자 스에마쓰(末松保和) 등 20여명의 일인 학자들과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李丙燾),신석호(申奭鎬)․홍희(洪憙)가 참여하여 1938년(소화13년) 3월에 드디어 24,409쪽에 달하는 ≪반도 조선사:현행국사≫ 34권이 완간 했던 것이다. 세계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남의 나라를 강탈한 해적이 우리나라 역사(국사)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끝.
참고 : 한국의 고대사는 오직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 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아
우리 나라를 강탈한 침략자가
거짓 가짜로 만들어 준 국사(僞書(위서)를
그대로 교육시키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는

도대체
반민족적 기관인가,
대한민국을 망치는 기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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