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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25   
   이명박 대통령은 제사장으로 선포하라


이명박 대통령은 제사장으로 선포하라

 

1, 우리나라의 국왕은 제사장이었다.

 우리나라의 선조님들은 12지지(十二支地: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3등분하여 4시를 정했다. 즉 하루의 4시는 밤 3시(해,자,축)이고, 새벽 3시(인묘진)이고 대낮 3시(사오미)이고, 저녁 3시(신유술)이다.

일년의 4시는 겨울 3개월(해자축), 봄 3개월(인묘진), 여름 3개월(사오미), 가을 3개월(신유술)의 4계절이 있다. 지구의 4계는 동절(冬節) 3천년, 춘절(春節) 3천년, 하절(夏節) 3천년, 추절(秋節) 3천년으로 12,000년을 주기로 빙글빙글 돌아간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의 동절(冬節)은 빙하기에 해당하고, 6천여년 전은 춘절(春節)에 해당하고, 3천년 전부터 시작된 하절을 지나 지금은 추절(秋節)에 진입했다. 지금부터 약6천여년 전 인류의 성산(聖山) 엄택곡부(奄宅曲阜:중국 하남성)에 태호복희와 여호와 하느님이 처음 진단국(조선)을 개국한 땅이다. 그 때 복희황제와 여호와 옥황상제께서 신옥(神屋)에서 거처 하실 때의 춘절(春節)에는 온갖 새들이 찾아와  지저 기고, 온갖 꽃들이 향기가 피어났다. 인류의 부모 태호복희와 여호와 하느님이 곡부(曲阜)에 내려오시어 계실 때는 각 가정마다 만복이 충만하여 영화롭고 부귀를 누리며 살았다. 그야말로 지상천국이었다.


태호복희와 여호와 상제는 처음 도읍한 陳(진: 曲阜(곡부)에서 염제신농을 낳았다. 태호복희의 아들 염제신농씨가 곧 배달국의 제 8세 환웅 안부련 이시다. 농업의 시조이며, 의학의 시조 염제신농은 복희가 도읍한 陳(진:곡부)에서 140년 동안 재위하고 붕어하셨다.


[복희와 여호와의 둘째 아들] 황제헌원의 출생은 어느 날 하루 저녁에 하늘 복판에 북두칠성을 에워싼 금빛을 보고 황제헌원을 임신하여 24개월 만에 有熊(유웅: 하남성 신정)의 남쪽 헌원(하남성)에서 낳았기 때문에 軒袁(헌원)이라 이름 지었다. 즉 신모(神母) 여호와 삼신 하느님은 태호복희의 여동생이며, 부인으로서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을 낳은 사람입니다.


2. 현생 인류는 한 가족에서 시작되었다.

태호복희씨와 여호와의 어머니는 극락세계의 화서씨이고, 아버지는 뇌신(雷神) 풍뢰우(風雷雨)의 아들이기 때문에 태호복희와 여왜의 성(姓)씨 또한 風(풍)씨라 했다. 복희씨의 이름은 方牙(방아)이며, 혹은 蒼牙(창아)이고 이를 蒼精(창정)이라 하고 호를 春皇(춘황), 또한 號(호)는 皇雄(황웅)이다.


복희와 여호와 하느님의 자손들은 후세에 풍씨 성이 나누어져 佩(패), 觀(관), 任(임), 己(기), 庖(포), 理(리), 姒(사), 彭(팽)씨의 여덟 성씨로 나누어졌다. 지금 산서성의 濟水(제수)에 그들이 세웠던 任(임), 宿(숙), 須(수), 句(구), 須臾(수유)족 등의 나라들이 있었다.


현생 인류는 5,500년 전경 태호복희와 여호와 하느님의 한 가족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직 부자(父子)의 관계이며, 그의 자손들이 종교 도시국가를 건설하여 천계(天界) 지고무상(至高無上)의 여호와 옥황상제(玉皇上帝)를 하느님으로 받들어 숭배했습니다.


3. 단군왕검은 여호와 삼신을 숭배했습니다.

한 나라의 왕조가 무려 2천년을 계승한 나라는 세상에서 오직 고조선 삼한 뿐입니다. 지혜에 형통한 성인(聖人)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제가 만들어준 엉터리 현행국사의 고조선은 [1.단군조선]⇒[2,기자조선]⇒[3.위만조선]이 있다.고 3조선으로 구분하고, 위만조선이 멸망한 이후 삼한이 등장하고, 고조선과 삼한이 다른 시대로 기술돼 있습니다.


4. 우리나라의 제천의례(祭天儀禮) 역사

1,고조선시대의 제천의례

단군 재위 51년 무오(BC 2283년) 雲師(운사) 倍達臣(배달신)에게 명하여 강화도 정족산(왕험성:하북성에 三郞城(삼랑성)을 쌓고 마리산에 삼신(三神)에게 제사 드리는 제단을 쌓았다. 이것을 塹城壇(참성단)이라 한다. 54년 신유(BC 2280년) 3월 단군임금은 친히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삼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자손만대의 안녕과 나라의 번영을 빌었다.


우리겨레는 아득한 옛날부터 여호와 삼신(옥황상제,하느님)에게 자손들의 번영과 아들을 점지해 주기를 기원하며 숭배하는 풍속의 제천의례(祭天儀禮)는 널리 퍼져있었다. 조선국의 백성들은 임금님을 따라 집집마다 제단(부자단지)을 만들어 두고 새벽마다 “여호와 삼신할머니를 숭배하며 수복과 자식의 점지를 기원하였습니다.


고조선 삼한 중의 진한왕은 제천단(祭天壇)에서 여호와 삼신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주제한 제사장을 단군(壇君)이라 칭했기 때문에 고조선 진한(辰韓)의 마지막 고열가 임금까지 무려 무려 2096년을 계승한 47대의 단군(壇君)이 있습니다.


고조선 삼한시대는 오직 천자(天子)만이 제사장(祭司長)이 될 수 있고, 그 외 어떤 나라의 왕도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즉 天壇(천단:원구단:중국 북경)에서 삼신(三神, 옥황상제, 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主祭)한 제사장(祭司長)을 단군(壇君,檀君)이라 칭했습니다. 단군은 진리의 정법(하도(河圖:天符道)을 전 세계에 전파하며, 인류를 구제(救濟)했습니다. 

고조선 삼한시대 말기(末期)의 후3한 시대부터 난세(亂世)를 맞아 국력에 따라 자칭 천자 혹은 황제라 자칭하게 된다. 특히 중국 왕들은 스스로 천자(天子)라 자칭하며 황제(皇帝)라 칭했으나, 모두 다 하느님(옥황상제)으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한 가짜 황제(천자)들이다.
 
▶ 하늘에는 삼신(三神:옥황상제)이 있고, 
        ▶ 땅에는 삼한(진한, 마한, 변한)이 있었다. 


우리 대한민족은 아득한 옛날부터 삼신(옥황상제,하느님)을 공경하고, 숭배하며 자손들의 번영과 아들을 점지해 주기를 기원하는 풍속은 널리 퍼져있었다. 우리나라는 천제 환웅천왕시대부터 임금이 친히 제천단에서 삼신(하느님)에게 제사를 올리었다. 고조선 삼한, 부여, 예, 맥, 신라, 고구려 등은 10월 상달에 [삼신할머니]에게 제사 지내고, 백제는 四仲月(4중월)에 제사를 지냈는데 禱天(도천), 舞天(무천), 祭天(제천), 迎鼓(영고), 東盟(동맹)이라 하였다.


넋을 잃은 대한국인아..!!!

제사장은 단군인가? 중국의 요임금인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대한민족만의 고유한 풍속이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오직 하느님(옥황상제)을 숭배한 단군왕검의 후손들이여...!

BC 2333년 天壇(천단:원구단:중국 북경)에서

삼신(三神, 옥황상제, 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한 제사장(祭司長)이

중국의 요(堯)임금 인가? 이스라엘 민족인가? 고조선의 단군인가?


고조선 삼한 중의 진한은 국왕이 친히 매년 10월 3일 天壇(천단:원구단:중국 북경)에 나아가 여호와 삼신(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주제한 제사장(祭司長)이며, 삼한의 영토를 관리하고 삼한의 제후를 임명하는 왕권을 갖고 있었다. 마한은 54개 제후를 거느리고,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의 제후국이 있었다. 고조선의 단군왕검은 천리(天理:하도, 진리의 정법)를 전 세계 만국에 전도하며 어리석은 중생을 교화하여 인류를 구제한 종주국(宗主國)이다. 


2. 삼국시대의 제천의례

[삼국사기]에 의하면 3한 중 진한의 전통적 제례문화를 계승한 "신라, 고구려,·백제의 3국은 다 같이 국왕이 친히 제천단(祭天壇)에서 여호와 삼신(하느님)과 천지에 제사를 지낸다" 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신라왕은 제사장이며, 교황(敎皇)이다

고조선 삼한 중의 진한은 신라이고, 마한은 고구려이며, 변한은 백제가 된다. 삼한 중의 진한(辰韓)의 법통을 계승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왕과 고구려의 고주몽(동명성왕)은 여호와 하느님의 외증손자이며, 진실로 천자(天子, 聖人(성인)이시며, 祭司長(제사장)으로서 天壇(천단:원구단)에서 흰옷을 입고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다.


한편 천부도(天符都)를 굳게 지키며 오직 여호와 삼신(치성광여래,하느님)을 숭배하며, 불교(佛敎)를 신앙하였습니다. 특히 신라의 진평왕(서기 579-632년)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사가 신라의 진평대왕을 배알하고 옥으로 만든 天賜玉帶(천사옥대)를 하사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오직 천자(天子)만이 옥황상제(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主祭)할 수 있는 제사장(祭司長)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삼국사기의 제사(祭祀)]에 대한 기록은 곧 신라의 국왕이 진짜 천자(황제)인가? 중국의 국왕이 가짜 황제(천자)인가? 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삼국사기 雜誌 第一 祭祀(잡지 제1 제사]

신라의 宗廟(종묘) 제도를 살펴보면 제 2대 南海王(남해왕) 3년 봄에 비로소 시조 혁거세 廟(종묘)를 세우고 4시에 제사를 올렸으며 손아래 친누이 阿老(아로)가 主祭(주제)하였다 제 22대 지증왕은 시조께서 탄강하신 지역의 奈乙(내을)에 神宮(신궁)을 창립하여 祭享(제향)을 올렸다. 제 36대 惠恭王(혜공왕)에 이르러 비로소 五廟(오묘)를 정하였는데 味鄒王(미추왕)은 金씨 姓(성)의 시조가 되고 太宗大王(태종대왕)과 文武大王(문무대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큰 전공이 있었으므로 아울러 자손 대대로 宗廟(종묘)를 훼손하지 못하게하고 친(시조 부모) 두 분을 겸하여 五廟(5묘)가 되었던 것이다


제 37대 宣德王(선덕왕:780~785년)에 이르러 社稷壇(사직단)을 세웠다. 또 祀典(사전)에 나타나 보이는 신라 국경내의 산천에 모두 다 미치지는 못했으나 천지(天地)에 제사하는 것은 대개 왕실의 제도로서 天子(천자)는 七廟(7묘)에 지내고 諸侯(제후)는 五廟(5묘)와 二昭(이소)와 二穆(이목)에 지내고 太祖(태조)는  五廟(5묘)에 제사를 올렸다.

또 말하기를
天子(천자)는 천지(天地)와 천하의 名山大川(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고 諸侯(제후)는 社稷(사직)과 名山大川(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는 제례(祭禮)가 있어서 감히 함부로 예를 넘어서 행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壇當(단당)의 高下 遺門(고하 유문)의 內外 次位(차위)의 尊卑(존비) 陳設登降節(진설등강절), 尊爵(존작) 변豆(변두) 牲牢冊祝(생뢰책축)의 禮(예)에 대하여 추진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기록을 대략 적어 보면 1년에 여섯 번을 五廟(오묘)에 제사를 지내는데 <정월은 2일과 5일> <5월 5일> <7월은 10일> <8월은 1일과 15일> 12월은 寅日(인일)이였다.
               
[신라는 산서성] 新城(신성)의 北門(북문)에서 八착(납향 제사)를 지내는데 풍년에는 大牢(대뢰: 소, 양, 돼지의 세 가지의 희생물을 갖춘 제수(祭需)를 사용하고, 흉년에는 小牢(소뢰:양과 돼지 두 가지의 희생물을 갖춘 제수(祭需)를 사용 하였다.

立春(입춘) 후의 亥(해)일에는 明活城(명활성:산동성) 남쪽 熊殺谷(웅살곡)에서 [신라]의 先世(
선세)의 조상이신 염제신농(炎帝神農)에게 제사 지내고, 立夏(입하)후의 亥(해)일은 [산서성] 新城(신성) 北門(북문)에서 中農祭(중농제)를 지내었다. 

신라는 立秋(입추) 후 亥(해)일에는 蒜園(산원)에서 황제헌원의 부인 잠신(蠶神) 서능(西陵:궁상(窮桑)에게 後農祭(후농제)를 지내고, 立春(입춘) 후 丑(축)일은 犬首谷門(견수곡문)에서 風伯祭(풍백제)를 지내고, 立夏(입하)후 申(신)일은
卓渚(탁저:하북성 탁주)에서 雨師祭(우사제)를 지내고 立秋(입추)후 辰(진)일은 本彼遊村(본피유촌)에서 靈星祭(령성제)를 지내고 있었다. 註: 하북성(河北省)의 탁록현(涿鹿縣)에 "계명산(鷄鳴山)이 있습니다. 이산을 마고산(할머니 산)혹은 삼신(山神)산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이 신라의 계림(鷄林)이라 사료된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모든 禮典(예전)을 다 조사해 보아도 [신라]는 다만 先農祭(선농제:농업의 시조 염제신농)만 있고 中農(중농), 後農祭(후농제)는 없었다. 三山五岳(삼산오악) 이하 名山大川(명산대천)은 大中小(대중소)로 나누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후략)
 
[四城門(4성문)의 祭祀(제사)] : 1, 大井門(대정문) 2, 吐山良門(토산량문) 3, 習比門(습비문) 4, 王后梯門(왕후제문)의 제사는 각 부장이 지내는데 梁部(양부:강소성양주)에서 지냈다.
[四川上(4천상)의 祭祀(제사)] : 1, 犬首(견수) 2, 文熱林(문열림) 3, 靑淵(청연) 4. 撲樹(박수)에서 지냈다. 文熱林(문열림)에서는 日月祭(일월제)를 지내고 靈廟寺(영묘사)의 남쪽에서 五星祭(5성제)를 지내고 惠樹(혜수)에서 祈雨祭(기우제)를 지낸다.

 
[삼국사기 잡지 제1 제사(祭祀)]의 본문 내용과 [신라 五岳(오악)의 中祭祀(중제사)]를 살펴보면 신라의 5악(五岳)이었던 중국의 5대 명산을 한반도 속의 5대산으로 얽어 맞춘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일제는 삼국사기도 부분적으로 변조했던 것이다.


엉터리로 얽어 맞춘 신라 五岳(오악)의 中祭祀(중제사)

東  →  吐含山(大城郡) ---------> 동 토함산(대성군)
南  → 地理山(菁州) -----------> 남 지리산(청주)
西  → 鷄龍山(熊川州)----------> 서 계룡산(웅천주)
北  → 太伯山(奈巳郡) ---------> 북 태백산(내사군)
中  → 父岳(一云公山押督郡) ----> 중 부악(일명 팔공산 압독군)

신라의 5악(五岳)이었던 중국의 5대 명산
1. 東岳(동악)은 산동성의 泰山(태산)이고, 2. 西岳(서악)은 섬서성의 華山(화산)이고, 3. 하남성의 嵩山(숭산)을 중앙 팔공산이라 한다. 4. 호남성의 衡山(형산)은 南岳(남악)이고, 5. 산서성의 恒山(항산)이 北岳(북악)이다. 각산의 위치에 따라 五岳(5악)이라 불렀다. 


신라에 五臺山(5대산)이 있었다
신라의 5대산은 山西省(산서성)에 있다. 신라의 영토는 한 덩어리의 지역이 아니라 땅이 떨어져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5小京(소경)제도를 실시했다. 즉 감숙성의 금성을 비릇하여 산서성, 산동성, 호북성 일부와, 하남성, 호남성, 사천성 동북부지역, 귀주성, 강서성, 안휘성,절강성, 강소성지역이며 중국 대륙의 동남부일대이다.

'아랍의 문헌 ' 에서
      신라의 위치는 중국 대륙의 동쪽에 있었다.


가, 신라의 위치에 관한 아랍문헌의 기술
신라의 위치와 관련해 첫 기록을 남긴 술라이만의 『중국과 인도 소식』(851년)지에 의하면  "중국 동쪽에 신라의 도서가 다음과 같이 있다"고 하고, 중세 아랍 역사학의 태두인 마스오디는 신라의 위치를 "중국 육지의 동단"으로 설정했다.
중세 지리학자인 이드리시(al-Idrisi,1099~1166년)는 『천애 횡단 갈망자의 산책』(1154년)에서 신라를 중국 동남에 위치하고 해안에 여러 개의 섬을 명기했다. 이것은 한국 이름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벨호(B. Velho) 세계지도(1562년)보다 무려 408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한국 이름이 기입된 현존 세계지도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신라의 지리적 위치와 관련된 기록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라는 중국의 동편, 지구의 동단에 자리하고 있다 고 기술하였다.  '사막 지대에 생활하던 아랍-무슬림인 들에게 산세가 수려하고 무구무병(無垢無病)한 자연환경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는 신라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신라는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빈부의 격차도 없이 넉넉한 재물로 부의 혜택을 누리며 황금문화를 꽃피운 이상향적인 나라가 바로 신라국 이었다. [경주 박물관에서 발췌 정리]


3. 고려시대의 제천의례

『고려사』의 성종 세가 2년(983년) 정월 천단에서 제천의례를 행한 짧막한 기록이 전한다. 정월 신미일과 을해일, 정축일에 행해진 원구에서의 기곡과 적전에서의 친경과 농업의 시조 염제신농제사, 그리고 천덕전에서의 잔치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원구 의례는 여호와 하느님에게 제사를 올리면서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천하 만민을 위한다는 커다란 천명(闡明)은 천명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 권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4,조선시대의 제천의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3년(1394)에 [동방의 청제(靑帝)]에게 제사를 올리었다.. 조선 세조 2년(1456년)과 1457년 원구단에서, 동방의 청제 [태호복희황제와 여호와 삼신, 황천상제 하느님, 치성광여래]에게 제사를 올리었다.


세조10년(1464년 1월15일 원구단에서 여호와 황천상제님께 제사를 지내는 의례는 다음과 같다. 임금은 면류관(冕旒冠)을 쓰고 용포를 입고 환구단(圜丘壇)에 올라 제천의례를 행하였다. 호천상제위(昊天上帝位)·황지기위(皇地祇位) 및 태조위(太祖位)에는 임금이 친히 삼헌(三獻)을 행하고, 대명위(大明位) 및 풍운뢰우위(風雲雷雨位)에는 세자(世子)가 삼헌(三獻)을 행하고, 야명위(夜明位) 및 동남북서해(東南北西海), 악독산천위(岳瀆山川位)에는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가 삼헌을 행하였다.


5. 일제에 의해 제천의례가 끊어졌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3년(1394)에 [동방의 청제(靑帝)]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한 원구단을 설치했다. 조선 세조 2년(1456년) 《상정고금례(詳定古今禮)》에 실려 있는 원구단(圓丘壇)을 참작하여 대한제국의 고종은 황제즉위를 앞두고 1897년 10월에 원구단이 한반도 속에 580여평의 철도호텔(현재의 조선호텔) 대지에 지었다.


일제의 중국 대륙과 조선 침략에 의해 광활하던 중국 땅의 조선 영토를 잃어버렸다. 한편 본래 삼한시대부터 단군 황제가 친히 제천단에서 동방 천제 태호복희와 여호와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올리던 중국원구단은 중국에 빼앗기고 한반도 속으로 쫓겨 온 고종은 광무(光武) 원년 1897년 10월 국내외에 독립적 황제국으로 선포하기 위해 대한제국 즉위를 앞두고 남별궁(南別宮) 터에 원구단을 쌓고, 1897년 10월 11일 고종이 친히 원구단에서 천신에 고제(告祭)한 후 황제에 즉위했다. 즉 고종 이전은 중국 땅의 천단에서 제천의례를 행했다.


6. [동방의 청제(靑帝)]가 누구란 말인가? 

 일제가 만든 망국적 국사교육에  넋을 잃은 7천만 천손들이여.! 도대체 동방의 청제(靑帝)가 누구란 말인가? 바로 태호복희 황제가 아니던가? 7천만 대한민족은 진실로 각성하자.

1897년 10월에 건립된 원구단(圓丘壇:환구단(環丘壇)이 조성된 2년 후인 1899년 환구단 북쪽에 3층 팔각정인 황궁우(皇穹宇)를 건립하고, 신위판(神位版)을 모시었다. 여호와 황천상제위(皇天上帝位)는 단의 제1층 북쪽 동편에서 남쪽을 향하고, 황지지위(皇地祗位)는 단의 제1층 북쪽 서편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대명천(大明天)과 야명성위(夜明星位)는 각각 제2층의 동서쪽에 있으며, 제3층 동쪽에는 북두칠성, 오성(五星), 28수(宿),오악(五岳),사해(四海),명산(名山),성황(城隍)에 배치하고, 서쪽에는 운사(雲師)·우사(雨師)·풍백(風伯)·뇌사(雷師)·오진(五鎭)·사독(四瀆)·대천(大川)·사토(司土)의 제위(祭位)를 모시었다. 



 한반도 속의 원구단은 1911년 2월 조선 총독부가 관리하고부터 1913년 원구단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580여평의 철도호텔(현재의 조선호텔)을 지었다. 지금은 원구단의 북쪽 모퉁이에 위치했던 팔각정 형태의 황궁우만 남아 있다. 1914년 이후 원구단에서 제왕이 친히 “여호와 황천상제님”에게 지내는 제사는 끊어지고 말았다.



 
중국의 원구단은 한국의 유물이다
중국 북경 중심부의 동서남북에는 4방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 있고, 그 제단은 지금 천단공원, 지단공원, 일단공원, 월단공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족은 고조선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1897년 10월에 한반도 속에 원구단(圓丘壇)이 건립되기 이전까지 제천단에서 여호와 삼신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지냈다면 중국의 원구단(천단)은 한국의 유물로 명확히 입증되었다. 제사장의 고조선시대부터 삼국시대와 조선이 중국 대륙에서 건국되었으니 중국의 천단(원구단)은 당연히 한국의 유물입니다.


 ▲  우리나라의 역대 제왕들이 천제를 올리던 중국의 천단

원구단은 여호와 하느님에게 제사하는 제단이다

중국 북경의 천단(天壇) 남쪽에 원구단(圓丘壇), 황궁우(黃穹宇), 기년전(祈年展)이 있다. "원구단은 인류의 부모이며, 4대문명의 시조이며, 종교의 조종(祖宗)이며, 세계의 만 인류가 숭배해야 할 “여호와 황천상제(皇天上帝)”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이다.

원구단(환구단)은 매년 음력 동지 날 여명 전에 황제가 친히 제천의식을 주최한다. 의식이 진행될 때 원구단 앞에는 큰 초롱이 걸려있고, 초롱 안에 길이 석자이상의 촛불이 켜져 있다. 환구단의 높이는 5m의 3층이고 상층의 직경이 50m 중층은 60m, 하층이 70m이다.

하늘은 양이므로 천수(天數) 1, 3, 5, 7, 9 및 그 배수로 정해졌다. 제단 위의 중심은 하나의 원석이며, 첫째 줄은 9개의 돌로 쌓고, 두 번째는 18개, 세 번째 줄은 27개, 아홉 번째 줄까지는 천부경(天符經) 글자 수와 같이 81개로 만들었다. 황궁우는 단층에 <여호와 황천상제(皇天上帝)>의 위패를 모셔두는 곳이다. 기년전(祈年展)은 기곡전이라고도 하며, 황제가 여호와 옥황상제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경천의례(敬天儀禮)"이다. 


현재 불교사찰 뒷 쪽에 자리한 칠성각(치성광여래), 삼성각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전래된 우리 민족 고유의 종교(신교)적 유물입니다. 신라시대 후기에 불교가 흥성하고부터 불교사찰 뒤편으로 물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대한민족은 아득한 옛 부터 북두칠성, 삼신(여호와 옥황상제(하느님)”을 황천상제(皇天上帝)로 받들어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조선시대 사람들은 황천상제가 누구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제사를 올렸으니 어찌 여호와 하느님이 진노하여 대한민족이 35년의 옥고(獄苦)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항산(恒山,상산(常山)
항산은 5악 중의 북악이며, 내장성(內長城) 혼원(渾源)현에 있으며 높이는 2219척. 최고봉은 천봉령(天峯嶺)이다. 태상노군(太上老君:도교 도조)과 원시천존(元始天尊)이신 인류의 어머니 여호와 옥황대제(玉皇大帝)님을 모시는 도관이 있다. 산기슭에 북악묘(北岳廟)가 있고 일명 상산(常山)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산서성의 항산은 현공사(縣空寺)가 유명하다.



   ▲  인류의 어머니...! 여호와 옥황상제(삼신,치성광여래,북극대제)



중국의
태산(泰山)
태산은 천지신(天地神)에게 봉선의식(封禪儀式)을 거행하였다. 황제(천자)는 인간세상이 무사태평하기를 고제(告祭)하여 천지 신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의식으로 보통 황제에게는 허락하지 않으며 후덕(厚德)한 황제에게만 선양(禪讓)되는 준엄한 의식이다.

신라의 탈해왕은 산동성 태산의 東岳神(동악신)이 되었다.
[삼국유사] 신라 제2대 南解王(남해왕)은 제위 6년(서기 8년) 탈해가 賢人(현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맏 공주(阿尼夫人(아니부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7년(서기 9년) 탈해를 登庸(등용)하여 大輔(대보)로 삼고 국정(國政)을 위임하였다.

신라 제 4대 탈해왕의 아버지는 多婆那國(다파나국:인도:남천축국)의 含達婆(함달파) 왕이고 어머니는 積女國(적녀국)왕의 딸이다. 탈해는 62세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23년 기묘(29년)에 돌아가시자 疏川丘(소천구)에 장례했으나 죽은 후에 神(신)이 되어 말하기를 내 뼈를 東岳(동악) 泰山(태산)에 안치해 두어라 라고 명령을 내렸다.

 

또한 기록은 탈해가 죽은 후 신라 27세 문무왕 때 서기 680년 3월 15일 밤 太宗(태종:?)의 꿈에 몹시 사나운 모습을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가 탈해이니라, 내 뼈를 疏川丘(소천구)에서 파내어 塑像(소상)을 만들어 吐含山(토함산:태산)에 안치하도록 하라. 왕은 그의 말에 따라 시행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신라국은 지금도 제사만은 끊어지지 않았다. 즉 탈해는 산동성 태산의 東岳神(동악신)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 산동성 泰山(태산)에 탈해왕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신라의 제천(祭天)을 교황청이 계승하고 있다
진한의 제천의례(祭天儀禮)를 계승한 신라는 천단에서 여호와 옥황상제(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한 제사장의 나라이므로 국왕(國王)이라 칭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제회(祭會)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되지 않으면 하나의 국정도 행사할 수 없었다. 또한 국방(國防) 역시 비록 국경을 두고 방비는 하였으나 탈해왕이 재위하고부터 국왕을 세워, 대권을 행사하자는 여론이 대두하여, 이러쿵저러쿵 제회(祭會)에서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즉 신라의 부도(符都)는 지금의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 교황청(敎皇廳)의 교황(敎皇) 임무와 같이 오직 여호와 하느님에게 제천의례(祭天儀禮)만 행사한 제사장의 황제국이며, 마랑(馬郞:司徒)으로 하여금 도리(道理)로 교화(敎化)하여 인류의 평화를 지향한 군자국이었다.
그리고 황금빛 찬란한 신라의 금관은 제천의식 때 쓰는 금관이라 사료된다.
 
[부도지(符都誌)] 지금 세계 각처의 제족들이 사도(邪道)에 미쳐 날뛰어, 눈 멀은 봉사가 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우리 신라가 지금 자멸하면 누가 眞道(진도)를 현창하며, 후세에 누가 알아 볼 수 있겠는가? 차라리 진도(眞道)를 지키며 의롭게 목숨을 바쳐, 순교(殉敎)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것만 못 할 것이다. 오직 선택은 국왕을 세워 왕이 대권(大權)을 집행하며, 군마를 호령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부도(符都) 전역을 회복하는 것뿐이다.

마침내 중론(衆論)이 결정되어 왕국 수립을 주장하던 석탈해(昔脫解)가 신라 왕위를 계승하고 비로소 왕이라 칭하게 됩니다. 또한 서라국(徐羅國)이라 칭하고, 비로소 방패와 창을 사용하여 옛 신라 국경 내를 모두 다 평정하였다. 즉 5천축국 중의 1국이었던 多婆那國(다파나국:아유타,인도:남천축국)의 석탈해는 중천축국(中天竺國=중국=신라)에 들어와 가야국의 김수로왕을 만나게 됩니다. 5천축국은 곧 조선이라 칭했습니다.

고조선의 천자(天子)와 봉선의식(封禪儀式)
우리나라는 태고적부터 하느님을 숭배한 천손사상(天孫思想)이 전래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진실로 천제(天帝)가 개국한 나라이며, 천자(天子)가 다스린 나라입니다. 오직 천자만이 황제라 칭할 수 있다. 즉 하느님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천단(祭天壇)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아 제사를 주제한 장손국의 나라입니다. 

황제(皇帝)는 자신의 장손이나 아들 등 가까운 친족에게 제위(帝位)를 물려주는 왕위가 아니라 반드시 태산(泰山)에서 제천의례와 함께 선양(禪讓)의식을 취한 뒤 황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고대 요(堯)·순(舜)·우(禹)는 황제라 칭하지 않고 임금이라 칭했다.

중국의 진시왕은 가짜 황제이다
중국의 5대 명산 5악 중에서 태산(泰山)은 황제 제위전에 반드시 봉선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에 五岳之長(오악지장),혹은 五岳獨尊(오악독존)이라 하여 천하제일의 명산이다. 역대 제왕은 태산에서 반드시 하느님의 뜻을 받는 封禪(봉선)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사기의 '봉선대전(封禪大典)에서 오직 천제(天帝)의 자손 천자(天子)만이 봉선의식을 지낼 수 있는 특권적 제사의식이다. 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태산은 해발 1545m 최고봉인 천주봉(天柱峰) 정상에 여호와 옥황상제(玉皇上帝,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옥황전(玉皇殿)이 있습니다. 한나라 부족을 통일한 진시왕은 이듬해인 BC 219년 태산(泰山) 정상의 옥황전(玉皇殿)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진시왕(秦始王)이 태산(泰山)에서 봉선제를 거행한 다음 하산하려고 하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억수같은 비를 만나 나무 아래서 피신해야만 했다. 이것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다.  이 광경을 지켜본 신하들과 많은 사람들이 자칭 황제라 칭한 진시왕이 지낸 봉선제를 비웃었다. 라고 사마천 사기는 덧붙이고 있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 관중이 지은 관자(管子)라는 책에는 중국 역대 황제 72명이 태산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행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거짓 허구로 밝혀졌다. 「관자」라는 책이 관중 저작이 아니라 전국시대 이후에 나왔음이 확실한데다 「논어」나「맹자」를 비롯한 그 이전 어느 문헌에도 봉선에 관한 언급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여호와 옥황상제(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한 제사장(祭司長)은 오직 조선국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특권적 제사의 봉선의례(封禪儀禮)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황제라 칭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서를 변조, 조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중국은 ‘묘회’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봄철에 재연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사장의 나라로 선포하라

현세의 모든 사람들은 인류의 어머니이신 “여호와 황천상제”님을 남신(男神:하느님 아버지) 혹은 서양신으로 인식하고 신양하고 있으니 천년을 기원한들 어찌 여호와 하느님의 가호(加護)를 받을 수 있겠는가? 정부당국자는 진실로 각성하고, 여호와 하느님의 성전(聖殿)을 건립하여, 제사문화를 복원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제사장의 나라로 선포하라...!!!




취 지 문


인류의 시조 성전(聖殿)을 건립하자

1, 태호복희와 여호와 하느님은 인류의 시조이시다

지상의 일체 모든 種(종)의 기원은 시조(始祖)가 있다는 명료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류의 기원은 원숭이류의 진화설과 여호와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창조설을 믿고 있으니 어찌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인류의 기원은 약 1만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약 5,500년 전경 태호복희와 여호와 하느님의 한 가족”에서 시작되었다. 즉 태호복희와 여호와 하느님은 남매이며 부부로서 농업의 시조이며 의학의 시조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을 낳은 신모(神母)로서 사람이며, 인류의 시조(始祖:부모)이시다. 그의 자손들이 종교 도시국가를 건설하여 천계 지고무상(至高無上)의 여호와 삼신을 옥황상제로 숭배하며 지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이른바 지상낙원을 이룩한 역사적 진실이 밝혀졌다.


인류 문명의 시조 태호복희 황제는 우주의 창조는 물론 일체 만물이 끊임없이 생성소멸(生成消滅)되는 원리를 신묘한 하도(河圖), 낙서(洛書)의 4상8괘 符效(부효)로 도식하여 후손들에게 규범으로 삼게 하셨다. 동방의 청제 태호복희 황제가 창제하신 무극이 태극에서 유,불,선의 3종교가 파생되어 태호복희와 여호와 옥황상제는 인류의 부모이며. 인류 문명의 시조이며, 종교의 조종(祖宗)으로 밝혀졌다.


2, 동서양이 다 같이 여호와 하느님을 숭배했다

대한민족은 고대이래로 자식의 점지와 수복을 삼신, 칠성에게 기원하며 누구나 다 하느님을 숭배한 민족적 고유신앙이다. 도교는 여호와(女媧) 옥황상제를 숭배하고,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등은 여호와를 하느님으로 신앙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와 각 종교마다 비록 야훼(여호와) 하느님의 이름을 다르게 기원했으나 동서양이 다 같이 여호와 황천상제를 유일한 하느님으로 숭배한 역사적 진실이 밝혀졌다.


3. 인류의 시조 성전건립은 시대적 요청이다

고대이래로 우리나라의 국왕은 제천단에서 [동방의 청제 태호복희와 여호와 황천상제]에게 제사를 주제한 제사장의 단군(壇君)이었으나 나라를 잃은 일제식민지시대에 제사가 끊어지고 말았다. 제사장의 한국역사를 말살한 천인공노할 일제 만행으로 인하여 세계의 모든 종족은 인류의 부모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종교적 갈등에 의한 종교전쟁으로 무수히 많은 민생을 학살하여 온 세상에 피를 뿌렸다.


전 세계의 모든 종족은 인류사적 종교적으로 [인류의 시조와 종교의 조종]을 올바로 깨닫는 것보다 더 시급한 시대적 요청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시조 성전(聖殿)을 건립한다면 첫째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인류의 부모와 종교의 조종을 올바로 깨닫고 여호와 하느님을 숭배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일본왕은 제사장의 한국 역사를 말살, 왜곡, 변조한 사실을 전 세계에 고백하고 사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원시조가 창제하신 무극이태극도의 일종교리(一宗敎理)로 종교적 통일을 이루어 종교로 인한 각종 전쟁을 종식시키는 인류평화의 성전(聖殿)이 될 것이다. [인류의 시조 성전(제천단:祭天壇)] 건립에 7천만 대한민족은 종파를 떠나서 범국민적 동참을 당부하며, 전 세계인은 민족과 종교를 초월하여 적극적 동참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2008. 2. 18.

                                                人類始祖聖殿建立推進委員會

                                                인류시조성전건립추진위원회


人類始祖聖殿建立推進委員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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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 찬불가 /진추하- (悟)깨달음



중국 찬불가 (悟)깨달음

 

출처 :峰德寺 원문보기 글쓴이 : 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