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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9.14   
   대한민국에 대한민국이 없다


[홍준호 칼럼] 대한민국에 대한민국이 없다

홍준호 칼럼, 맥아더 동상 철거

6·25의 포성이 멎은 지 3년 뒤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서울 파고다공원과 남산에 세워졌다.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동상이 인천 자유공원에 세워진 것은 그보다 1년 뒤다. 이 대통령의 동상들은 제작 4년 만인 4·19 직후 쇠줄에 묶여 끌어 내려졌고,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이 땅이 김일성 치하가 되는 것을 저지한 맥아더를 ‘민족통일을 가로막은 원수’로 부르는 이들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 시위대는 이승만시대를 함께 공격한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이승만의 독재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들은 이 땅에서 일본제국주의를 쫓아낸 미국을 ‘점령국’으로, 우리의 요구로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침략군’으로 부르면서 “양키 고 홈, 연방제 통일”을 외쳤다. 그들의 관심이 ‘민주주의’에 있지 않고, 이승만시대의 반(反)김일성 노선, 다시 말해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허물어뜨리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손에는 죽봉이 들려 있었다. 그걸 낫으로 한번만 치면 죽창이 된다. 그 죽봉들을 들고 그들은 광복 60주년인 올해를 ‘미군 강점 60주년 치욕의 해’로 불렀다. 세계 11대 무역국의 대도시 한복판에서 일부러 구하기도 쉽지 않을 60년 전 그 시절 그 무기로 무장하고 나선 풍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짐작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이땅의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새삼 절감하면서 아울러 우리는 그동안 대한민국의 역사를 얼마나 소중히 간직해왔는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치고 우리만큼 산업화와 민주화를 빨리 성취한 나라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성취의 역사, 빠른 성취에 따른 명(明)과 암(暗)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흔적은 너무 없다.

당장 건국대통령의 흔적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 서울 이화동의 이화장에 ‘건국대통령기념관’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곳은 이승만 대통령의 유품이 남아 있는 사저(私邸)이지 관광객이나 자라나는 학생이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남산에서 철거된 이 대통령의 동상은 얼굴 부분만 남은 채 지금까지 어느 개인집에 꼭꼭 숨겨져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제2공화국의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을 기억할 만한 흔적이 어디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

제3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19년 장기 집권으로 가장 많은 욕을 먹으면서도 국민적 인기도는 늘 높은, 영욕(榮辱)의 지도자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뜬 지 26년이 지났는데도 그와 그의 시대를 훑어볼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서울 영등포 문래공원에 그의 흉상이 있고 그곳이 5·16의 지휘부가 있었던 터라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드물다. 그러다 5년 전 어떤 인사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곳을 찾아가 끌어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아, 그런 흉상이 있었나” 했을 따름이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더 이상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이 김대중정부 시절 잠시 일었다. 우여곡절 끝에 ‘초대 국회의장 이승만’ ‘2대 국회의장 신익희’의 동상을 국회에 세웠고, 박정희기념관도 추진됐다. 그러나 박정희기념관은 이 정부 들어 흐지부지되더니 오히려 곳곳에서 박정희 흔적을 뜯어내는 일들이 벌어지고 각 분야의 고인(故人)들에 대한 깎아내리기, 동상 끌어내기, 영정 뜯어내기 등으로까지 번졌다. 그리고 급기야 죽봉 시위대가 등장한 것이다.

소련과 동구 민주화 이후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들이 곳곳에서 철거됐다. 제대로 된 나라, 정상적인 민주사회라면 우상화는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이다. 이들 사회는 대신 후손들이 이전 시대와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이나 기록관을 만든다. 김일성 부자 우상화의 나라 북한 쪽에 기대어 대한민국의 역사물을 부숴대려는 미친 짓들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들어야 할 대한민국의 기록물과 기념관을 당당히 만드는 일에도 이제 눈을 돌려야 한다.

[홍준호 칼럼] 대한민국에 대한민국이 없다

홍준호 편집국 부국장대우 jhhong@chosun.com

입력 : 2005.09.13 19:22 29' / 수정 : 2005.09.13 21:10 25'

▲ 홍준호 부국장대우